白鹿潭 속 하늘이 깊어
보고 싶은 얼굴이
있느냐 없느냐.
산ㅅ고개 넘어서 온
눈보라가
白鹿潭을 덮어도
가다오다 아모도 없는
하늘 밑에
나는 왔노라.
펄펄 날리는 눈 속에
나는 섰노라.
제주도 한라산 꼭대기
白鹿潭 속에
하늘 빛이 곱다.
시인 — 정지용 (鄭芝溶, 1902~1950)
정지용은 충청북도 옥천 출생으로, 휘문고보와 일본 도시샤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30년대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며 한국 현대시의 언어적 감수성을 혁신한 시인으로, 섬세한 감각적 이미지와 절제된 언어로 시의 조형성을 높이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복 이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한국전쟁 중 납북되어 이후 행적이 불분명하다. 오랜 기간 월북 문인으로 분류되어 작품이 금지되었다가 1980년대 이후 해금되었으며, 오늘날 윤동주·김소월과 함께 한국 근대 서정시의 정점으로 널리 기려진다.
시 소개
「白鹿潭」은 정지용이 1941년 한라산 백록담을 직접 오른 체험을 바탕으로 쓴 시로, 같은 해 발행한 시집 『白鹿潭』의 표제작이다. 눈보라 속 산 정상의 고요와 고독을 극도로 절제된 단행(短行)으로 담아내며, 자연의 숭고함 앞에 선 인간의 고립을 담담하게 제시한다.
짧은 행과 간결한 문장 안에 시각적 이미지를 압축하는 정지용 특유의 조형 의식이 유감없이 드러나며, '하늘'과 '눈'과 '물'이 이루는 삼중 반영 구조는 시 전체를 투명하고 순결한 분위기로 감싼다. 한국 산악 서정시의 대표적 성취로 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