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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 김소월

곰돌이 | 00:45 | 조회 1 | 좋아요 0



나는 어쩌면 생겨나서
이 세상 살아가나.
갈 길은 아직 천 리만 리
가기는 왜 이리 더딘고.


해는 서산(西山)에 기울었고
구름은 첩첩이 쌓였다.
풀 한 포기 없는 빈 들에
밤바람 소리만 높다.


살아도 죽은 듯 살고
죽어도 살 듯이 죽어라.
어느 것 더 나은 일인가
내 맘은 갈피를 몰라.




시인 — 김소월 (金素月, 1902~1934)

김소월(金素月)은 평안북도 구성 출신의 시인으로, 본명은 김정식(金廷湜)이다. 오산학교에서 스승 김억(金億)의 지도로 시를 배웠으며, 1920년대 한국 서정시의 정수를 이루는 작품들을 남겼다.

민요적 율격과 한국인 특유의 정서—이별·그리움·체념—를 섬세하게 녹여 낸 그의 시는 발표 당시부터 폭넓은 공감을 얻었고, 오늘날까지 한국 근대시의 고전으로 읽힌다. 1934년 서른두 살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시 소개

「번뇌」는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1925)에 수록된 작품으로, 삶의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내면을 담담한 3·4조 가락으로 풀어낸다. 갈 길은 멀고 발걸음은 더딘 나그네의 형상에 실존적 고뇌를 겹쳐, 짧은 세 연 안에 소월 특유의 한(恨)의 정서가 집약되어 있다.

해 지는 서산, 첩첩이 쌓인 구름, 풀 한 포기 없는 빈 들판이라는 황량한 풍경은 화자의 내면 풍경과 정확히 포개진다. 마지막 연에서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를 물으며 갈피를 잡지 못한다고 고백하는 목소리는, 소월 시 전반에 흐르는 근원적 슬픔의 한 핵심 표현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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