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시인 — 윤동주 (尹東柱, 1917~1945)
윤동주는 1917년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난 시인으로,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 중 항일 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여덟의 나이에 순국하였다. 그의 시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고통 속에서도 자기 성찰과 부끄러움, 그리고 순결한 윤리 의식을 담아냄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정신적 원형으로 자리 잡았다.
생전에 시집을 내지 못하였으나, 사후 1948년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면서 그 문학적 가치가 널리 알려졌다. 섬세한 서정성과 깊은 윤리적 자의식이 결합된 그의 시 세계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시 소개
「참회록」은 1942년에 씌어진 작품으로, 윤동주의 자기 성찰 의식이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시 중 하나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이라는 첫 이미지는 오랜 시간 닳고 더럽혀진 자아의 초상을 암시하며, 시인은 이십사 년의 삶을 돌아보며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를 날카롭게 묻는다. 현재의 부끄러움을 인정하면서도, 훗날 그 고백마저 부끄럽게 여길 미래의 자신을 상정하는 이중의 시간 구조가 이 시의 독특한 긴장을 만들어 낸다.
시의 결말에서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는 다짐은 끝없는 자기 정화의 의지를 보여 주며, 거울 속에 비친 '슬픈 사람의 뒷모양'은 시인 자신이자 시대의 고통을 온몸으로 감당하는 지식인의 형상이다. 간결한 연 구성 속에 깊은 윤리적 무게를 담은 이 시는 윤동주 시학의 핵심을 잘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