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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설 — 정지용

야옹이 | 00:23 | 조회 2 | 좋아요 0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마른 나무 가지 우에


눈 은쟁반에


하이얀 복숭아꽃이 피었네.




시인 — 정지용 (鄭芝溶, 1902~1950)

정지용은 충북 옥천 출신의 시인으로, 1920~30년대 한국 현대시의 언어적 세련미를 한 단계 끌어올린 선구적 존재다.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귀국 후 시문학파의 중심으로 활동했다.

감각적 이미지와 절제된 언어로 한국 모더니즘 시의 토대를 놓았으며, 이상(李箱)·박목월 등 후배 시인들을 발굴·지도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대표 시집으로 『정지용 시집』(1935)과 『백록담』(1941)이 있다.


시 소개

「춘설(春雪)」은 1940년대 초 발표된 작품으로, 시집 『백록담』에 수록되어 있다. 우수절(雨水節) 첫날 아침 문을 열자마자 맞닥뜨리는 봄눈의 감각을 극도로 압축된 언어로 포착한 시다. '문 열자 선뜻!'이라는 첫 행은 감각의 충격을 그대로 재현하며, 이후 시선은 먼 산 이마, 마른 나무 가지, 눈 쌓인 은쟁반 위 복숭아꽃으로 이동하며 겨울과 봄이 겹치는 순간의 신선한 긴장을 그려낸다.

각 연을 단 한두 행으로 끊어 내는 파격적 구성은 시선의 빠른 이동과 감각의 선명함을 강조하며, 정지용 후기 시의 간결·명징한 미학을 잘 보여 주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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