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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말 — 한용운

토순이 | 00:49 | 조회 2 | 좋아요 0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釋迦의 님이라면 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시인 — 한용운 (韓龍雲, 1879~1944)

한용운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의 승려·시인·독립운동가로, 불교 개혁과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한 삶을 살았다. 3·1운동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조선 불교 유신론을 저술하여 근대 불교 사상의 지평을 열었다.

1926년 간행한 시집 『님의 침묵』은 한국 근대 시문학의 정점으로 꼽히며, 이별과 그리움을 불교적 공(空)의 사유와 민족적 저항 의식으로 승화한 독자적 시 세계를 완성했다.


시 소개

「군말」은 시집 『님의 침묵』의 서문 격으로 배치된 산문시로, 시집 전체의 '님'이 무엇인지를 시인 스스로 해설한 글이다. 석가·칸트·마시니 등을 열거하며 '님'을 연인에 한정하지 않고 사랑과 지향의 대상 일체로 확장하는 사유가 인상적이다.

짧은 산문 세 단락이지만, 마지막 행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의 이미지는 시집 전체에 흐르는 그리움과 방황의 정조를 압축적으로 예고한다. 시집의 입구에서 독자에게 '님'의 의미를 열어 보이는 시학적 선언으로서 문학사적 위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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