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그늘로 얼골을 가리고 病院 뒷뜰에 누워, 젊은 女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日光浴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女子를 찾어 오는 이, 나비 한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 곳에 찾어 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病을 모른다. 나한테는 病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試鍊, 이 지나친 疲勞, 나는 성내서는 안된다.
女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花壇에서 金盞花 한포기를 따 가슴에 꼽고 病室안으로 살어진다. 나는 그 女子의 健康이― 아니 내 健康도 速
시인 — 윤동주 (尹東柱, 1917~1945)
윤동주는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여덟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시인이다. 그의 시는 일제 강점기의 어둠 속에서 자아를 성찰하고 순결한 내면을 지키려는 의지를 담아, 한국 근현대시의 가장 빛나는 정전으로 자리한다.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사후에 출간되어 오늘날까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으며, 그의 시는 저항과 부끄러움, 그리움과 희망이 섬세하게 교차하는 세계를 보여 준다.
시 소개
「병원」은 1940년 무렵 씌어진 산문시로, 윤동주의 시 가운데 비교적 산문적 호흡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살구나무 그늘 아래 홀로 일광욕하는 여자와 '병이 없다'는 진단을 받는 화자의 모습을 병치하여, 시대와 내면 모두에서 비롯된 이름 붙이기 어려운 아픔을 형상화한다.
찾아오는 이도 없고 나비 한 마리도 없는 정적 속에서 화자는 자신의 고통이 진단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 성내지 않으려 다짐한다. 금잔화 한 포기를 꽂고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과, 그 자리에 스스로 누워 보는 마지막 장면은 타인의 상처를 통해 자신의 회복을 조용히 소망하는 윤동주 특유의 연대 감각을 잘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