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招魂(초혼) — 김소월

햇살이 | 05.26 | 조회 6 | 좋아요 0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빗겨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시인 — 김소월 (金素月, 1902~1934)

김소월은 평안북도 구성 출신의 시인으로, 본명은 김정식(金廷湜)이다. 오산학교 재학 시절 스승 김억의 지도 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대 한국 근대 서정시의 정수를 이룬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민요적 율격과 한(恨)의 정서를 바탕으로 이별·그리움·죽음 등 인간의 근원적 감정을 노래하였다. 1925년 시집 『진달래꽃』을 출간하였으며, 32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 뒤에도 한국 시문학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으로 남아 있다.


시 소개

「초혼(招魂)」은 죽은 이의 혼을 불러들이는 전통 의례 '고복(皐復)'에서 제목을 가져온 시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절절한 비통함을 절규에 가까운 언어로 토해 낸다. 반복과 점층의 구조 속에서 이름을 부르는 행위 자체가 사랑과 애도의 전부가 되는 극적 긴장감이 돋보인다.

5연 20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소월 시 특유의 3음보 민요 율격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격정적인 감정의 흐름이 그 율격을 압도하는 독특한 긴장을 만들어 낸다. 한국 근대시에서 '이름 부르기'라는 모티프를 가장 강렬하게 구현한 작품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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