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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 윤동주

다람쥐 | 05.26 | 조회 7 | 좋아요 0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시인 — 윤동주 (尹東柱, 1917~1945)

윤동주는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일곱의 나이로 옥사한 시인이다. 짧은 생애 동안 그는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 부끄러움·자기 성찰·저항의 언어를 섬세한 시편으로 남겼다.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는 사후에 출간되었으나, 한국 현대시의 정신적 원점 가운데 하나로 지금까지 깊이 읽히고 있다.


시 소개

「참회록」은 1942년 1월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시로,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떠나기 직전 자신의 삶 전체를 '부끄러움'의 눈으로 되돌아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이라는 오래되고 흐릿한 거울의 이미지는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자의식과 자기 모멸을 동시에 상징하며, 현재의 고백이 미래에도 또 다른 부끄러움으로 남을 것이라는 역설적 구조가 시의 핵심을 이룬다.

시는 고백과 반성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단순한 자기 비하에 머물지 않고, 부끄러움을 응시하는 행위 자체에서 윤리적 성실함을 끌어낸다. '밤이면 밤마다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는' 행위는 불가능한 자기 정화를 향한 처절한 의지로 읽히며, 한국 근현대시에서 내면 고백의 극점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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