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折頂 (절정) — 정지용

구름이 | 02:52 | 조회 1 | 좋아요 0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츰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시인 — 정지용 (鄭芝溶, 1902~1950)

정지용은 충북 옥천 출신으로, 휘문고보와 일본 도시샤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귀국하여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며 한국 현대시의 언어적 토대를 세운 시인이다. 감각적이고 정밀한 이미지즘 시풍으로 20세기 전반 한국 시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으며, 박목월·조지훈·박두진 등 청록파 시인들을 발굴한 스승이기도 하다.

해방 후 좌우 이념의 격랑 속에서 활동이 제약되었고, 6·25 전쟁 중 납북되어 생사가 불명한 채 문학사에 비극적 공백을 남겼다. 오랫동안 금서·금명(禁名)으로 묶였다가 1988년 해금된 뒤 재평가가 이루어져, 오늘날 한국 근대시의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시 소개

「절정(絶頂)」은 1939년 발표된 작품으로, 일제 강점 말기의 극한적 시대 상황을 '북방의 고원'과 '겨울'이라는 공간·계절 이미지로 압축한 시다. 4연 8행의 간결한 구조 안에서, 채찍처럼 몰아치는 계절의 폭력 앞에 무릎 꿇을 곳조차 없는 절박함이 고조되다가, 마지막 행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는 역설적 전환으로 마무리된다.

절망의 벼랑 끝에서 오히려 강인한 의지와 미적 초극(超克)을 이끌어내는 이 결말은, 이육사의 「절정」과 함께 일제 말기 저항 서정시의 정점으로 한국 문학사에서 높이 평가된다. 정지용 특유의 감각적 이미지가 관념적 의지와 결합된 보기 드문 성취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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