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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열 — 정지용

멍뭉이 | 02:33 | 조회 1 | 좋아요 0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오래


낮이나 밤이나 켜켜이 쌓여
덮이는 눈을 이고
소나무는 시퍼렇다


내 혼자 인 이 봄이
오히려 두려워


그러나 이 봄이 오기까지
나는 너를 잊지 못하였다




시인 — 정지용 (鄭芝溶, 1902~1950)

정지용은 충북 옥천 출신으로, 1920~30년대 한국 현대시의 언어적 세련을 이끈 시인이다. 휘문고보와 일본 도시샤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며 감각적 이미지즘과 모더니즘 시풍을 개척하였다.

그의 시는 정밀한 언어 선택과 청각·시각적 이미지의 결합으로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 광복 후 월북하여 한동안 남한에서 금기시되었으나, 1988년 해금 이후 재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시 소개

「발열」은 정지용의 초기 시집 『정지용 시집』(1935)에 수록된 작품으로,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흔들리는 화자의 내면을 봄이라는 계절 이미지와 함께 담아낸 시이다. 머리와 발길은 잊었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봄이 오기까지 잊지 못했다는 마지막 고백은, 억제된 감정이 역설적으로 폭발하는 정지용 특유의 시적 구조를 잘 보여준다.

소나무의 시퍼런 빛과 켜켜이 쌓인 눈의 감각적 대비, 그리고 봄을 '두렵다'고 느끼는 역설적 심리가 짧은 행 안에 응축되어 있어, 그의 이미지즘적 서정이 감정의 절제와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단편 서정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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