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시인 — 김영랑 (金永郞, 1903~1950)
김영랑은 전남 강진 출신의 시인으로, 본명은 김윤식(金允植)이다. 1930년 박용철·정지용 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며 한국 순수 서정시의 한 봉우리를 이루었다. 섬세한 음악성과 남도 특유의 부드러운 언어감각으로 한국어의 음악적 아름다움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제강점기 내내 민족적 저항과 순수 서정 사이에서 고요한 내면을 지켜 낸 시인이기도 하다. 해방 후에는 보다 직접적인 현실 참여 의식을 드러냈으나, 6·25 전쟁 중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시 소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는 1935년 발표된 작품으로, 2연 8행의 단정한 구조 속에 봄날의 청명한 감각을 담아낸 서정시다. '햇발', '샘물', '에메랄드 하늘', '실비단'처럼 빛과 물과 천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고요하고 투명한 자연 속에 자신의 마음을 조심스레 포개려는 화자의 내면이 섬세하게 펼쳐진다.
각 행이 '~같이'라는 직유로 시작되거나 마무리되며 부드러운 운율감을 형성하는 점, 그리고 '우러르고 싶다' '바라보고 싶다'로 끝나는 소망의 어조가 시 전체에 은은한 여운을 남긴다. 한국어 고유의 음악성을 가장 잘 살린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