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 신화에서 최고 천신 디에바스(Dievas)가 소유한 검은 말과 흰 말은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우주적 질서의 상징이다. 이 두 마리의 말은 낮과 밤, 빛과 어둠, 태양의 순환을 구현하며, 디에바스가 하늘 들판을 가로질러 세계를 주재하는 신성한 힘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존재로 여겨졌다.
발트 신화 전통은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의 민요인 다이나(dainas) 속에 수천 편의 형태로 보존되어 있으며, 디에바스의 말들은 그 노래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모티프다. 19세기 민속학자들이 체계적으로 수집한 이 자료들은 인도유럽 신화 비교 연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 정체성 — 하늘 신의 우주적 쌍마
디에바스의 검은 말과 흰 말은 발트 신화 다이나 전통에서 천신 디에바스의 가장 친밀한 신성 동물로 묘사된다. 흰 말은 낮의 빛과 태양의 운행을 상징하고, 검은 말은 밤과 어둠의 영역을 대표하며, 이 둘이 함께 우주의 하루 순환을 완성한다.
발트 신화에서 말은 천신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동물로, 디에바스가 자신의 은빛 들판(하늘)을 경작하거나 달리며 세계를 감찰할 때 이 두 말이 항상 함께한다. 이 쌍마는 신의 권능이 낮과 밤 구분 없이 영속함을 나타내는 상징체계다.
2. 출생·계보 — 신화적 기원과 하늘 마구간
발트 신화의 다이나들은 디에바스의 말들이 하늘 산 정상에 위치한 신성한 마구간에서 기원했다고 전한다. 이 마구간은 은으로 만든 장식 안장과 황금 고삐로 채워져 있으며, 말들은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디에바스 곁에 존재했다고 노래된다.
비교 신화학적으로 이 쌍마는 인도유럽 신화의 신성한 말 쌍둥이 모티프와 연결된다. 라트비아 다이나에서 쌍둥이 신 디에바 델리(Dieva dēli, 디에바스의 아들들)가 이 말들을 손질하고 돌보는 장면이 묘사되어, 말들이 신의 가문 전체에 속한 존재임을 보여 준다.
3. 핵심 신화 1 — 하늘 들판을 경작하는 천신
발트 신화의 다이나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유형은 디에바스가 검은 말과 흰 말을 나란히 멍에에 메워 하늘의 은빛 산을 경작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천신이 농경과 풍요를 주재하는 존재임을 나타내며, 발트 농경 공동체의 우주론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디에바스는 은 쟁기를 들고 하늘 들판을 갈며 별자리들을 씨앗처럼 뿌리는 존재로 묘사된다. 검은 말과 흰 말이 이 쟁기를 끄는 동안, 달(메넬리스)과 태양(사울레)이 지켜보며 세계의 질서가 유지된다고 발트 전승은 가르친다.
4. 상징·도상 — 쌍마와 우주 이원론
발트 신화에서 흰 말과 검은 말의 쌍은 단순한 색채 대립이 아니라 우주 이원론의 시각적 표현이다. 라트비아 민속 자수와 목공 장식에서도 마주보는 두 말의 형상이 태양 문양과 결합되어 나타나며, 이는 발트 전통 문화 전반에 걸친 상징 체계를 보여 준다.
이 두 말은 또한 시간의 순환을 상징한다. 흰 말이 앞서 달리면 낮이 오고, 검은 말이 앞서 달리면 밤이 된다는 발트 민간 신앙이 다이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를 통해 디에바스는 시간 자체를 운행하는 최고 천신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한다.
5. 후대 영향 — 민속과 현대 문화 속 유산
발트 신화의 기독교화 이후에도 디에바스의 말 이미지는 민간 전승 속에 살아남았다.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의 전통 명절 및 농경 의례에서 말은 여전히 신성한 동물로 대우받았으며, 목각 말 조각이 신성한 공간을 장식하는 관습이 이어졌다.
19세기 후반 발트 민족 부흥 운동과 함께 디에바스의 검은 말·흰 말은 민족 정체성의 상징으로 재발견되었다. 현대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의 신이교 운동(디에브투리바 등)에서도 이 쌍마는 하늘 신의 권능과 우주 질서를 표상하는 핵심 이미지로 적극 부활하여 사용되고 있다.
★ 신의 이야기
태초의 하늘이 막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던 어느 날, 발트 신화의 최고 천신 디에바스는 자신의 은빛 산 정상에 서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세상에는 낮과 밤이 규칙 없이 뒤섞여 있었고, 태양 사울레는 어느 방향으로 달려야 할지 몰라 하늘 한복판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달 메넬리스도 마찬가지였다. 디에바스는 신성한 마구간으로 들어가 두 마리의 말에게 황금 고삐를 채웠다. 오른쪽의 흰 말은 아침 이슬을 먹고 자란 것처럼 몸 전체가 빛을 발했고, 왼쪽의 검은 말은 밤하늘의 색을 고스란히 담아 깊고 고요한 어둠을 뿜었다. 디에바스는 두 말을 은 쟁기에 나란히 메우고, 하늘 들판의 첫 이랑을 갈기 시작했다.
흰 말이 앞발을 내딛을 때마다 하늘 동쪽에서 빛이 솟구쳤고, 검은 말이 힘차게 발을 구를 때마다 서쪽 하늘에 별이 하나씩 박혀 들어갔다. 디에바스의 은 쟁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깊은 고랑이 생겨났고, 그 고랑 안에 그가 뿌린 씨앗들은 별자리가 되어 하늘 들판을 수놓았다. 발트 신화 전승에 따르면 이때 디에바스는 사울레에게 흰 말이 달리는 방향을 따라 달리라고 명했고, 메넬리스에게는 검은 말의 궤적을 따르라고 일렀다. 그리하여 태양은 낮 동안 흰 말의 발자국을 쫓아 하늘을 횡단하게 되었고, 달은 밤 동안 검은 말의 길을 따라 고요히 떠오르게 되었다. 두 말이 하늘 들판을 한 바퀴 다 돌면 하루가 완성되었다.
경작이 끝난 뒤 디에바스는 두 말의 고삐를 풀어 마구간으로 돌려보내며 이렇게 노래했다고 발트 민요는 전한다. 「흰 말이여, 너는 내일도 빛을 이끌고 오너라. 검은 말이여, 너는 오늘 밤도 별들을 지켜라.」 그날 이후 두 말은 쉬지 않고 번갈아 하늘을 달렸으며, 그 리듬이 곧 세상의 시간이 되었다. 디에바스의 검은 말과 흰 말이 멈추는 날은 곧 우주의 질서가 무너지는 날이라고 발트 신화는 경고한다.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의 농촌에서는 말이 쟁기를 끌며 밭고랑을 낼 때, 그 광경에서 디에바스의 두 말이 하늘을 갈던 태초의 기억을 읽어 내는 이들이 있다.
발트 신화의 검은 말과 흰 말은 낮과 밤, 시간과 질서가 신의 손에서 비롯되었음을 오늘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