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시인 — 이육사 (李陸史, 1904~1944)
이육사는 경북 안동 출신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본명은 이원록(李源祿)이다. 필명 '육사(陸史)'는 대구형무소 수감 당시의 수인 번호 '264'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내내 열일곱 차례에 걸친 옥고를 치르며 항일 투쟁을 이어갔고, 1944년 베이징의 일본 감옥에서 순국했다.
그의 시는 강인한 저항 정신과 절제된 고전적 품격을 동시에 지닌다. 절망적 현실 앞에서도 미래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는 의지의 언어로, 한국 저항시의 정점에 자리한다.
시 소개
「청포도」는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발표된 작품으로, 이육사의 대표 시 가운데 하나다. 청포도가 익어 가는 칠월의 풍경을 통해 먼 곳에서 돌아올 '손님'을 기다리는 염원을 노래하며, 이 '손님'은 조국의 광복이나 해방된 미래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 풍요롭고 감각적인 색채 이미지—청포도의 초록, 흰 돛단배, 은쟁반, 하이얀 모시 수건—가 겹치며,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는 시인의 정결한 기다림을 아름답게 형상화한다.
전체 6연의 고른 호흡 속에 고전적 기품이 흐르며, 저항의 뜻을 직접 드러내는 대신 서정적 풍경 안에 은유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이육사 시 특유의 절제미를 잘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