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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추억 — 윤동주

햇살이 | 04:36 | 조회 4 | 좋아요 0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를 쪽쪽 접고 착착 날아 내렸다.


한 ​손에는 책을, 한 손에는 짐을 — 이런 사람이 넘치도록
보통 광경.


이상스레 틀리어도 너를 생각하면 연기가 솟고,
비둘기가 날아 내렸다.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시절에 알던 그 여자의
지금은 어느 나라에 있는지 모르고
노랗게 낡은 사진 속에 — 손남아 웃고, 슬퍼도 없는 얼굴.




시인 — 윤동주 (尹東柱, 1917~1945)

윤동주는 1917년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에서 수학하고,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투옥되어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여덟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시인이다. 그의 시는 일제 강점기의 어두운 현실 앞에서 자신의 내면을 치열하게 성찰하는 순결한 목소리로, 한국 근현대시의 정수로 꼽힌다.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는 그의 사후에 출간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가장 널리 읽히는 한국 시집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시 소개

「사랑스런 추억」은 1942년 작으로, 봄날 아침 기차역 플랫폼이라는 구체적 일상 장면 속에서 어린 시절 기억 속 한 인물을 떠올리는 회상시다. 담배 연기와 비둘기, 낡은 사진이라는 소박한 이미지들이 겹쳐지며, 그리움과 상실이 조용히 배어든다.

감상적 과잉 없이 담담하게 기억을 건져 올리는 윤동주 특유의 절제미가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화려하지 않은 일상의 풍경이 오히려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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